[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6. 권리금 얹어 매물로…어린이집이 빵집?
- LIFE/▷ Jr. H
- 2017. 11. 15. 09:31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집에 폐쇄회로영상(CCTV)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부결되리라고 말입니다. 83명의 국회의원이 찬성했지만, 반대(42명)와 기권(46명)이 더 많았습니다.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부결된 것을 놓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또 한 번 "원장님들의 힘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CCTV 설치 자체를 찬성하는 선생님도, 반대하는 선생님도, 이 결과가 어린이집 원장님들의 파워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보육현장에 CCTV 설치가 가져올 역효과를 고민한 이들의 '승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어린이집연합회, 무서운 곳이에요"
"어린이집연합회 힘 때문이죠. 로비를 엄청나게 했을 거예요. 찬성하면 낙선운동 한다고도 했겠죠."
대구에서 13년 동안 어린이집 교사로 일해 온 문경자(43)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연합회의 힘도 무섭고,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표를 던지자니 여론의 시선도 겁이 나는 국회의원들이 스리슬쩍 본회의장을 나가는 방식으로 사실상 부결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전국의 어린이집은 4만 여 곳이 넘습니다. 그 어린이집의 원장님들로 이뤄진 이른바 '연합회'의 힘이 그렇게 셀까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무서운 조직"이라고 했습니다. 문경자 선생님은 말합니다.
"2년 전에 어린이집 비리와 학대가 계속 터지면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자는 법안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연합회가 법안 발의한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항의하고 '낙선시키겠다' 운운하니까 다 발을 빼더라고요."
지난 2013년의 일입니다. 보건복지부 및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며 영유아보육 사무에 종사하는 국가공무원 및 지방공무원에게 관련 범죄에 대한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법안이 제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 13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 법은 발의된 지 보름 만에 철회됐습니다. 공동발의자들이 잇따라 자기 이름을 빼겠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원장님들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습니다.
"연합회가 지역별로, 어린이집 유형별로 다 있잖아요. 서울시민간어린이집연합회, 서울시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서울시직장어린이집연합회, 서울시가정어린이집연합회. 그 안에 또 분과가 있고요. 각 연합회는 모두 자기들 회비로 대표 변호사, 노무사를 두고 있어요. 어린이집총연합회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와 노무사도 따로 또 있고요. 그 사람들은 원장님들을 위해 일하는 거예요. 어린이집 운영에 불리한 내용이 법안으로 나오면, 그 법을 반대할 논리를 만들어주죠.
또 연합회는 어떻게 하면 수익창출을 더 하나 고민해서 그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에요. 어떻게 하면 교사들 최저임금만 주나, 시간외수당이나 휴일수당 어떻게 안 주나, 그런 거요. 조금 더 민주적으로, 상식적으로 운영하려는 원장이 있어도 주변에서 '너 그렇게 하면 못 먹고 산다, 집도 못 산다' 그런대요."
2015년 지금, 대한민국의 '보육'은 민간에 완전히 맡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3년 전체 어린이집의 15.2%였던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은 지난 2012년에는 5.2%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회복지법인와 직장어린이집까지 합쳐도 그 비율이 채 10%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국공립이라 해도, 거의 90% 이상을 민간에게 위탁을 맡겨 운영하고 있는 만큼, 진정한 '국공립'이라 말하기도 어렵지요.
이는 외국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은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의 80% 이상, 핀란드는 70% 이상이 공립시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보육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은 1차적으로 민간 위주의 공급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이혜원 부연구위원이 지난 2014년 1월 <재정포럼>에 발표한 보고서의 한 구절입니다. 이런 기이한 구조에 대한 지적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보육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입니다. 그 공적 영역을 민간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 더 나아가 보육이 한 개인의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구조. 그 구조를 만들고 또 심지어 부추기는 정부. 그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다뤄보려 합니다.
아이들 많을수록 커지는 권리금…3억까지 권리금 주고도 어린이집을 산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어린이집 매매'를 치면, 여러 사이트 주소를 보여줍니다. 매물로 나온 어린이집의 매매를 중계해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규모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이른바 '권리금'이라는 것이 붙어 있습니다. 그 권리금이 많게는 1억 원을 뛰어넘습니다.
실제 사례를 볼까요? 경기도 평택의 한 어린이집. 60명 내외를 돌보는 이곳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70만 원을 내는 80여 평의 어린이집입니다. 그런데 권리금이 1억3000만 원이네요. "평택 아파트 대단지 부근/ 현 정원마감/ 2015년 입학 정원마감/ 고수익 보장/ 평가인증 완료." 이런 '홍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정원마감'과 '고수익 보장'이 모두 이 매물의 장점으로 꼽혀 있네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이들 수가 많을수록 권리금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많으면, '고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라네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요?
"이런 거예요. 만5세반의 경우 1:20 이잖아요? 23명까지 초과보육이 가능하고요. 1인당 보육료는 22만 원이에요. 그러면 월 보육료가 얼마에요? 500만 원이 넘죠. 그런데 그 아이들 돌보는 교사 월급? 민간이나 가정어린이집은 보통 최저임금 주잖아요. 500만 원에서 교사 임금 110만 원 빼고, 나머지는 다 운영비에요. 전기세, 수도세, 교재교구비, 급식재료비 다 빼고도 남죠. 그런데 만5세반만 있나요? 그렇게 남은 돈은 다 원장 급여가 되요. 보건복지부의 보육교직원 보수 지침에 원장 급여 지침도 있지만, 원장 급여는 상한선이 없어요. 한 달에 500만 원을 가져가든, 1000만 원을 가져가든 상관없죠. 그러니 잘만 되면 권리금 얹어 파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문경자 선생님의 얘기입니다. 권리금을 얹은 어린이집 매매는 정부 조사에서도 확인됩니다.
보건복지부는 3년마다 보육실태조사를 실시하는데, 2012년 조사가 가장 최근입니다. 이 조사를 보면, 어린이집 문을 새로 열 때 권리금을 지불한 경우가 32.7%였습니다. 평균 권리금은 4766만 원으로 나타났네요.
권리금 평균액을 보면, 정원이 많을수록 권리금도 커졌습니다. 20명 이하는 평균 3200만 원, 21~39명 어린이집은 5500만 원, 40~79명은 8400만 원, 80명 이상의 대규모 어린이집은 1억에 가까운 9400만 원입니다.
결국 권리금은 아이들 '머릿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이 조사에서 가장 많이 권리금을 지불한 사례를 보면, 서울은 1억5000만 원이지만, 그 외 도시에서는 3억 원의 권리금 지불 사례도 있었습니다.
"식빵 한 조각이 오전 간식, 요플레 하나로 10명 나눠줘…권리금 내면 운영 부실"
권리금이 왜 문제냐고요? '웃돈'을 지불하고 어린이집을 인수한 사람은 당연히 이 '웃돈'을 회수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잊혀질만하면 터져 나오는 어린이집 급식비리, 보조금 횡령, 특별활동비와 관련한 리베이트, 유령교사나 허위아동 등록 등의 돈과 관련된 비리. 권리금이 그 출발점과도 연관이 있으리라는 사고는 상식선에서도 가능합니다.
'비리'까지는 아니어도 급식 관련한 이야기는 만나본 모든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조심스럽게 털어 놓습니다.
"예전에 민간에서 일할 때 일인데요. 식빵 한 조각을 잼 발라서 15조각을 내서 한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더라고요. 식빵 한 조각이 그 반 전체의 오전 간식인 거예요. 어떤 곳은 부모들에게 쌀을 보내라고 하기도 한대요. 급식 쌀이 정부 지원으로 나오는데도 부모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걷는 거예요. 간식 사오라거나, 색종이나 딱풀을 준비물로 가져오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요. 그거 다 안 되거든요."
경기도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김지혜(33, 가명) 선생님의 얘깁니다. 문경자 선생님도 말했습니다.
"알림장 수첩에 뭘 먹었다고 쓰지 얼마만큼 먹었다고 안 쓰잖아요. '오늘은 딸기 먹고 갑니다'라고 하면, 부모님들은 딸기를 양껏 먹었겠거니 상상하시죠? 그렇지 않아요. 딸기 맛만 보는 거죠. 부모가 보낸 요플레 한 개를 아이 10명 떠먹이는 곳도 있고요. 부모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선물이라도 주시면, 원장실에 다 갖다놓으라고 하고 원장님이 퇴근할 때 다 가져가시죠. 그런 곳 진짜 많아요.“
아주 이상한, 극소수의 어린이집만 그런 것 아니냐고요? KDI가 지난 2013년 8월 발표한 '보육·유아교육 지원에 관한 9가지 사실과 그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의 한 부분을 같이 보실까요?
"고액의 권리금을 지불한 후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부단가 산정 시 설정했던 수준의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고 급식의 질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학부모가 이러한 정보를 확인하고 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기관 운영자가 굳이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유인이 시스템 내에 내장되어 있지 않다."
KDI는 "어린이집 권리금은 시설투자에 대한 대가로만 보기 어려우며, 수익에 대한 기대가 반영될 결과"라며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수익'을 기대하고 '웃돈'을 얹어 어린이집을 사들였는데, "현재 정부지원금액은 표준보육비용과 근접한 수준"이니 수익을 내기가 힘들고, 그런 상황에서 "인가증이 거래되고 권리금이 높게 형성되는 것은 서비스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점을 다 알면서도 정부는 어린이집이 개인 사유재산이어서 권리금까지 오가는 매매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치원은 매매 자체가 금지돼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이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어린이집만 매매가 가능할까요? 결국 정부가 어린이집도 빵집이나 편의점처럼 사고 팔 수 있도록 열어준 것 아닌가요? 정부가 열어놓은 그 시스템의 피해는 우리사회의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받고 있는데 말입니다.
<출처: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여정민 기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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