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9. 공동육아, '귀족 어린이집' 안 되려면…
- LIFE/▷ Jr. H
- 2017. 11. 15. 09:36
"저는 단점을 많이 말하려고 나왔는데요."
지하철역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오고 간 뒤, 김정은(39, 가명) 선생님이 한 말입니다.
김정은 선생님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교사입니다. 2012년 말부터 일했으니, 어느덧 만 2년이 넘었네요. 전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도, 민간 유치원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중간에 잠시 아예 다른 일을 하기도 했었다네요.
김정은 선생님은 현장의 보육교사로 일한 시간 중에 "지금이 가장 좋다"는데, 그런데 왜 '단점이 많다'고 하는 걸까요? 더욱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잇따른 어린이집 학대 사건의 대안처럼 인식되고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3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김정은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김정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온 마을'의 힘으로 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구호' 같은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이 말은 실제 육아의 과정을 기술한 '팩트'에 가까웠지만, 지금 '온 마을'의 힘으로 자라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이 꿈을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교사가 돌보고, 저녁이 되면 다시 부모가 찾아가는 일종의 '분업 체계'로 이뤄져 있는 보육을 '온 마을'이 공동으로 맡아보자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권리에 무게를 싣다 보니, 교사의 권리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존중 받아야 다른 이를 존중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김정은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아이들과도 평등한 관계 속에 제 교육철학을 펼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공동육아는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교사를 별명으로 부르고,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고, '아마(아빠엄마를 가리키는 말, 학부모를 의미한다)'와 교사의 관계도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평등할 뿐 아니라, 원장과 교사도 그런 관계를 지향한다는 겁니다.
"내가 좋은 철학을 가지고 학부모나 원장님을 설득하면, 바뀌기도 해요. 그런데 일반 어린이집은 아니죠. 아이들이 너무 많아 교사가 지치는 것도 있지만, 말 잘 듣는 교사를 선호하는 원장님이 많다 보니 그런 소통이 잘 안 되잖아요. 아이들을 잘 보고 싶은데, 환경 꾸미기 같은 불필요한 업무가 너무 많다고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교사들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주고 조정이 가능한 건 바로 조정을 해주거든요."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보육 환경도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지양"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교사가 계획하고, 아이들은 따라오는 방식의 수업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나들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김정은 선생님은 설명합니다. 미세먼지만 없으면, 비가 와도 나들이를 간다네요. 그 나들이에서 아이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겁니다.
"사실 인지교육은 거의 하지 않아요. 글자도 미리 가르쳐주지 않고요. 그게 왜 중요하냐고요? 한 교사가 아이들과 시장에 나들이를 갔대요.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 가게는 무슨 가게일까' 물어봤더니, 글자를 아는 아이는 가게 간판을 읽고 답하는데, 모르는 아이들은 그 가게의 물건들을 탐색하는 거죠. 유아 시기는 직접 만져보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더 중요한 시기예요."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불가능한 교사 휴가, 공동육아는 어떻게 가능할까?
프로그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좁은 공간에 여러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놓여 있는 '살인적인' 보육 환경도 지양합니다. 당연히 교사 대 아동 비율도 낮습니다.
김정은 선생님이 지금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은 총 35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합니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는 5명입니다. 장애아가 있어 교사 5명 중 한 사람은 특수교사입니다. 그 외에 원장과 영양교사도 있지요. 원장과 영양교사를 빼고,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 대 7인 셈입니다.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확연히 적습니다.
김정은 선생님은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돌봅니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육아의 철학 때문에, 우리 나이로 5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이 한 방에 섞여 있습니다.
처음 어린이집 교사가 되었던 10여 년 전, 김정은 선생님이 돌봐야했던 아이들의 수는 무려 24명이었습니다. 심지어 국공립어린이집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 가운데 한 아이는 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화장실 갈 시간이 전혀 없는 거예요. 물 먹을 시간도 없고요. 저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해결을 못 하니까, 제 인권이 침해를 받으니까,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잘 되진 않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을 보내고 청소할 기운도 없었어요."
24명의 아이를 한 사람의 교사가 돌보다 보니, 안전사고도 빈번했습니다. 중증 장애아를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나머지 23명의 아이들은 방치돼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사고가 나면 부모들은 '민원'을 넣고, 그럴 때마다 김정은 선생님은 "나는 자질 없는 교사인가봐" 자책하곤 했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의 인권 뿐 아니라 교사의 인권까지 보장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는 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안식월' 제도까지 있습니다. 어떤 곳은 연차와 월차 외에도 보건휴가까지 있다고 하네요.
"3년 마다 한 달을 쉴 수 있어요. 교사의 휴식이 질 높은 보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여름휴가 5일은 연차에서 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고요. 겨울휴가는 연차로 5일을 쓸 수 있어요. 남은 연차는 수당으로 주고요."
점심시간도 휴게 시간이 아닌 것으로 인정해줍니다. 매일의 점심시간 1시간을 시간외수당으로 보상해주는 겁니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법을 지켜달라는 말조차 하기가 힘들다지요.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교사가 자기 권리를 말하면 사명감이 부족하고 돈 밖에 모르는 교사로 찍히잖아요. 제가 제 권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저를 너무나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회의 시간에도 원장님의 얘기에 반대할 수가 없어요. 바로 찍히거든요."
반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교사회가 있습니다. 그 교사회에서 논의한 이야기를 교사 대표가 부모와의 회의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매년 임금 관련 협상도 교사 대표가 이사회와 직접 합니다.
또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여러 행사도 부모들이 준비합니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어린이집 행사를 직접 준비하니 참여의 공간이 넓어지고, 교사는 교사대로 행사 준비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그만큼 교사가 보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저희는 1년에 한 번 전체 '모꼬지'를 가거든요. 단오나 대보름 때도 크게 행사를 하고요. 그 준비를 대부분 부모님들이 하세요. 놀이감도 부모님들이 모여서 만들어요. 청소도 저희가 안 해요. 보육 외에 교사들이 해야 하는 업무는 부모들이 많이 도와주시죠."
왜 확산이 안 될까? '높은 비용'이라는 문턱이 너무 높다
이렇게 좋은데, 왜 아직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소수'일까요? 역사만 20년이 넘는데, 아직도 그 비중이 전체 어린이집의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 때문입니다.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큰 것이죠.
대부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부모협동조합으로 운영됩니다. 협동조합은 출자금이 있고, 이 출자금은 아이 1명당 600만 원에서 800만 원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이 출자금 외에도 매달 조합비를 내야하는데, 이 역시 20만 원에서 40만 원 가량 됩니다. 국가가 무상으로 지원하는 보육료 외에, 부모의 직접 부담이 이 정도입니다. 입학금도 다른 국공립이나 민간어린이집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비쌉니다.
김정은 선생님이 근무하는 어린이집은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로 출자금을 대폭 낮췄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보육료 외에 부담하는 조합비는 매달 30만 원입니다.
"그런데 연말에 결산을 해 보니 적자가 났다면, 그만큼의 돈을 조합원들이 나눠 부담해요. 사실 부모 부담이 상당하죠. 졸업할 때 출자금을 돌려주는 곳도 있고, 나가시면서 후원기금으로 내고 나가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귀족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다'라는 시각도 있는 거고요."
비싼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어린이집 문을 열 때 제일 큰 비용부담은 시설비입니다. 집을 사면 더 큰 목돈이 들고, 임대를 하더라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지요. 시설 관련 비용은 국공립만 정부에서 지원합니다. 공동육아 뿐 아니라 민간이나 가정 어린이집도 이 돈은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공동육아는 이 돈을 출자금으로 충당하는 셈입니다.
그 밖에도 교사에게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고, 법이 정한 휴가를 보장하는 등의 작다면 작은 배려도, 사실 재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 어린이집보다 낮은 교사 대 아동 비율도 공동육아 어린이집 학부모의 비용 부담을 높이는 이유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아이 어린이집 출자금으로 낼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매달 30만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은요? 김정은 선생님이 "돈 있는 가정 아이들만 (공동육아라는) 좋은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이기도 하고, 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널리 확산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합니다.
직장에 휴가 내고 '일일 교사' 할 수 있는 부모가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될까?
부모의 경제적 부담만 큰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강조되는 곳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앞서 말한 '청소'를 들 수 있겠네요.
"저희 터전(어린이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부모들이 청소를 하는데, 어떤 곳은 새벽마다 부모님들이 당번을 정해서 출근하기 전에 청소하기도 한대요."
교사가 휴가를 가면, 부모가 '일일 교사'로 그 자리를 메꿉니다. "그 과정을 통해 교사의 어려움을 이해도 하고, 아이들과 친해지자는 취지"이지만,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는 그런 일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선생님은 "맞벌이 가정은 안 그래도 부모님들이 모두 힘드신데, 그런 것까지 해야 하니 지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국가의 잘못이에요. 인력을 충분하게 지원해주지 않으니까 그 부담을 부모가 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고요."
지난 6화와 7화에서 다뤘던, 민간이 장악하고 있는 보육 현장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네요. 국가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다 보니, 민간은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고, 보육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보는 현장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는 결국 자신들의 희생으로 '공동육아'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저소득층 부모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공동육아는 결국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부족한 부분을 다 교사의 희생과 부모의 부담으로 감당하는 거예요. 사실 정부 지원금이 지금도 넉넉한 것은 아니죠. 그런데 또 보육료 인상을 섣불리 얘기하기도 어려워요. 민간어린이집은 그 보육료가 대부분 원장의 자기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거든요. 국가가 교사 인력이라도 충분하게 지원해주면 좋은데, 그것도 안 되잖아요."
일반 어린이집도 별도의 청소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면, 교사의 휴가기간 대체인력이 충분히 투입된다면, 보육 외의 업무를 도와줄 인력이 있다면, 어떨까요?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도 어려움은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교사에게 '마냥 천국'인 것은 또 결코 아닙니다. 장시간 근무라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보편적인 어려움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곳에 비해 근무시간이 적지는 않아요. 아이들 대부분이 6시까지는 남아 있고요. 상반기에는 저녁에 가정방문 상담을 하는데, 그때는 한 달 정도 거의 매일 야근이죠. 서류할 시간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평가인증 때문에 서류가 많기도 하고, 또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일반에서는 안 하는 우리만의 서류도 많고요."
김정은 선생님이 일하는 곳은 서류 작성 시간을 시간외근무로 인정해줍니다. 수당을 어느 정도 지급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의나 행사는 시간외근무로 인정되지 않는다"네요.
"회의가 한 달에 최소 4번은 있고, 행사도 많거든요. 근로기준법 위반이니 수정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러면 안식월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물론 충분히 이해는 해요. 부모들의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고, 또 부모들도 자기 노동조건이 좋지 않으니까요. '나도 연차도 없고, 시간외수당도 없는데' 이런 마음이 드시겠죠. 그래서 사실 전체 사회의 노동조건이 후퇴할 때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의 노동조건도 덩달아 나빠져요."
김정은 선생님은 "공동육아 어린이집도 최근에는 많이 일반 어린이집처럼 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단순하게는 '평가인증' 때문입니다.
"평가인증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놀잇감이 보육실 내에 있어야 하거든요. 애초의 정신은 실내와 실외가 구분 없이 배움의 장소가 되는 거였는데, 인증 심사를 위해 놀잇감도 많이 만들어 놓고요. 인지교육을 안 한다고 했지만, 또 인증을 통과해야 하니 수나 언어 관련 놀잇감도 생겼죠."
또 다른 측면의 어려움도 있다네요. 부모들이 희생을 많이 하고, 참여도 많이 하는 만큼, 목소리도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큽니다. 한 어린이집 선생님은 "일반 어린이집은 원장이 1명인데,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원장이 수십 명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터전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이 특정 교사를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내보내려고 하기도 했대요. 절반의 부모들은 '공동육아에서 교사 해고는 있을 수 없다'고 반대하고, 절반은 문제점을 더 크게 보면서 내보내려고 하고. 그런 갈등은 늘 있어요. 또 교사들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은 아니니까, 나름의 '갑을 관계'는 있죠. 어찌 보면 '갑'이 '을'보다 더 다수고요."
교사들이 이른바 '아마'들과의 관계에서 해야 하는 감정 노동이 분명히 존재하는 겁니다.
"하반기에는 낮잠 시간에 부모 상담을 하는데요. 그럼 '날적이'(어린이집 수첩)도 못 쓰잖아요. 그러면 부모들이 '왜 날적이 안 써주냐'고 하기도 하고요. 까페에 사진을 일주일에 평균 1회씩 올리는데, '왜 우리 애는 없냐'고 섭섭해 하기도 하고요. 아동학대 사건 같은 것이 불거질 때마다, 그런 곳에 에너지를 쏟아야 해요. 신뢰가 처음부터 없는 상태에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내가 당신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1년 내내 증명해보여야만 하는...."
처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왔을 때는, 이런 부모들의 시선이 조금 힘이 들기도 했다는 군요.
"저를 바로 신뢰하기 좀 어려웠나봐요. 제가 무슨 활동을 하면 '그건 공동육아적이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키재기 놀이’를 하려고 모양자를 샀는데, 그 모양자를 아이들이 따라 그리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창의성을 낮추는 교육'이라고 지적하기도 하고요. 정말 어려웠어요. 뭘 해야 하나, 한동안 눈치를 많이 봤죠."
"내 아이만 볼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야죠"
김정은 선생님은 "부모도, 교사도, 내 아이, 우리 터전만 볼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내 아이만 좋은 환경에서 키울 것이 아니라, 국가를 향해 자기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섬에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끼리만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큰 공동체 속에 있고, 아이들도 그렇잖아요. 교사의 희생, 부모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국가에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와 부모의 부담을 줄여달라고, 충분한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말해야죠. 내 아이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김정은 선생님은 이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영유아기를 보낸다 한들, 아이들은 다시 거친 사회로 나갑니다. 당장 초등학교만 가도, 공동육아에서 강조하는 '평등의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지 모르지요.
"학교는 권위적이고, 서열도 있고, 경쟁도 있잖아요. 저는 자존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우리 (터전 출신)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고민이 되요. 아이들을 끊임없는 경쟁으로 내몰고, 심지어는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내모는 사회를 해결하지 않고, 아동학대만 해결하겠다? 그것도 CCTV를 달아서? 너무 화가 났어요, 사실."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김정은 선생님은 여러 대목에서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온 사회를 보고 배운다"면서요.
"보육 정책 뿐 아니라 넓게는 노동 정책까지, 이 사회의 모든 면을 아이들은 보고 배우는 거예요. 아무리 어린이집 내에서 인권을 강조해도, 문 열고 나가면 노숙자들이 보이고, 먹고 사는 데 찌든 어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워, 어떤 아이로 자랄까요?"
다시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로 돌아갑니다. 김정은 선생님은 "제가 꿈꾸는 건 마을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영아를 시설에서 보육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어떤 부모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우울할 수도 있고, 또 전문가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지나친 기대감이나 소유 의식 같은 것도 시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좀 줄어들 수 있죠.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봐 주기 위해서도, 전문가가 돌보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요. 물론 그러려면 어떤 시설이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죠."
김정은 선생님은 계속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1:3 이렇게 나누기보다는 영아 1명을 교사 2명이 보기도 하고요. 엄마들과 언제든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하고요. 그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그러려면 그만큼 인력이 더 투입되야겠죠. 그런데 꿈이죠 뭐."
김정은 선생님은 웃었습니다. '꿈',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교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그것이 오히려 진짜 아동학대의 대안"이라고, 조용히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에서 선생님의 오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습니다.
<출처: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여정민 기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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