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10. 어린이집, 부모가 나서면 바꿀 수 있다
- LIFE/▷ Jr. H
- 2017. 11. 15. 09:38
오랫동안 달려온 연재의 끝이 보입니다. 미처 못 한 이야기가 아직 한 가득이라는 아쉬움이 앞섭니다. 어린이집 문제를 처음 들여다볼 때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 다음은 무기력함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상태로, 오랫동안 나아진 것이 없을까.'
내 아이를 돌봐 달라 부탁한 곳에서 정작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에서 시작된 고민은 제도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보육을 사실상 완전히 민간영역에 맡긴 채,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미 민간이 장악한 이 상태를, 고칠 수 있는 걸까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두 회는,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그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재가 한창이던 즈음에 한 독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양주 개구리어린이집 윤일순 원장님이었습니다. 민간어린이집이면서 동시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부모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과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원장님은 부모회 회장인 임현희(38) 선생님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본인 역시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엄마였습니다. 보육 현장에서 일한 경험은 없다 했지만, 어린이집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임현희 선생님이 보내오신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사실상 원장님의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민간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과 교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교사의 휴가를 보장하고, 살인적인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과정은 부모의 관심과 참여 속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 모든 노력에 앞서 보육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진심으로 아이들만을 생각하는 원장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부모, 어린이집을 만나다
첫 아이에 대한 기억
제가 처음 어린이집을 알아보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첫아이가 막 두 돌이 되기 전이었네요. 저는 하던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 실습을 나가야 했습니다. 제대로 어린이집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급한 상황에 몰려 있었죠. 막 개원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까, 혹시 엄마를 찾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 했죠. 저녁이 되어 아이를 만났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수첩에 아이의 활동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그 사진에는 유난히 예민했던 아이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잘 지내고 있으며 적응이 끝나면 분명 어린이집 생활을 즐거워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저는 실습이 끝나고 다시 아이를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둘째 아이에 대한 기억
24개월이 된 둘째 아이를 오빠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함께 보냈습니다. 두 아이를 보내고 바로 일을 시작한 저는 육아와 가사 일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들떠 있었죠.
그러나 잘 적응 할 줄 알았던 둘째는 생각보다 불안해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죠. "생각보다 아이가 불안해 하니 가능하면 좀 더 엄마가 돌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요.
선생님께 "일을 정리할 시간을 며칠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선생님께 마음을 열고 더 이상 울지 않으며 잘 생활 한다더군요.
그렇게 아이는 지금까지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적응, 첫째와 둘째의 차이였을까
첫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에 실패했던 저는, 과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적응하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네에 있던 가정어린이집과 제법 규모가 있는 기관 어린이집, 유치원 등 가리지 않고 상담을 다녔죠.
아이들과 선생님의 생활 모습을 문 너머로 볼 수 있었어요. 어린 아이들은 여럿인데 선생님은 한 분. 손이 많이 모자라 보였습니다.
원장님과 상담할 때 그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원장님들은 번번이 "저희는 규정에 맞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선생님들은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고 하더군요.
정말 전문가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혼자서도 잘 돌볼 수 있는 걸까?
원장님과의 상담으로도 어린이집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봐야겠다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전이었죠. 아이 하나도 버거운 제게 둘째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나도 보육전문가가 되면 아이 둘쯤 돌보기는 쉽지 않을까?'
보육교사 공부를 하며 학기를 마치고 실습을 나갔습니다. 직접 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을 확인 할 수 있었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선생님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모습에 엄마로서 참 부끄러웠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어린이집에서는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지만, 역시 아이들의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지만 나들이라도 있는 날이면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죠. 많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강한 통제는 어쩔 수 없어 보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며 "아이들과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다"던 한 선생님은 평가인증 준비로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활동 중 말썽이 나지 않으면, 선생님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셨습니다. 그 역시 자신이 맡은 업무였으니까요.
'도대체 이 평가인증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는 걸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엄마들 사이에는 평가인증 준비 중인 어린이집은 피하거나 옮겨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어요. 평가인증이 끝나고 나면 좀 나아졌을까요?
아이 셋을 키우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옆집 엄마는 "실습을 다녀와 아이들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오라며, 아이 셋을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었는데……. 그런 줄 만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아이 어린이집 보내기는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실상을 보고나니 도저히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믿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은 없는 걸까? 찾고 찾다 보니 공동육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공동육아는 부모협동보육시설로 부모들이 조합원이 되어 운영을 하니 어린이집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그런지 교사 대 아동의 비율도 낮았습니다. 또한 교사의 보수 교육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구요. 알아볼수록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은 이곳뿐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우리지역에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동육아를 하기까지 투자비용 역시 만만하지 않더군요. 어린이집 공간을 마련해야 했고 선생님을 모셔야 했으며 함께 할 부모조합원도 모아야 했으니까요.
그런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는 매일 매일 자랐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더러 "애를 유별나게 키우려는 부모"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도 공동육아로 운영하는 민간 어린이집이 생겼습니다!
민간 어린이집이 공동육아? 가능할까?
원장님이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어린이집을 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어린이집을 경험하고 공동육아를 준비하던 나에게 반갑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한 이야기였어요. 함께 공동육아를 준비하던 부모들도 반신반의했죠.
공동육아를 위해서는 부모 활동과 함께 운영과 관련하여 어린이집을 많은 부분 공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장님들은 보통 어린이집이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았거든요. CCTV는 설치해도 부모에게 어린이집 문은 열어주지 않았죠.
'과연 민간 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가 실현될 수 있을까?'
어린이집은 문을 열고, 부모는 참여하면, 그 결과는?
모든 어린이집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있습니다. 활동이 워낙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원장이 부모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게 되고 부모들 역시 그 역할을 불편하고 귀찮은 일 정도로 여기죠.
하지만 우리는 이 운영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부모회'를 조직하고 부모대표를 구성했죠. 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운영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는 전체 공개로 진행됐습니다. 어린이집 부모라면 누구나 참석 가능하구요.
또 어린이집 행사나 일정에 부모의 역할을 일부러 조금씩 만들었습니다. 부모의 참여를 활성화 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문을 연 효과가 났습니다. 어린이집 대청소나 선생님과 함께하는 방모임, 부모가 준비하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음악회 등을 진행했습니다.
지나친 교사 대 아동 비율, 낮출 수 있더라
일단 문턱을 낮추니, 변화는 여러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가장 먼저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존의 교사 대 아동 비율로는 이런 환경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데 모든 부모가 동의했습니다.
방법을 찾아야했습니다. 부모회는 특별활동비나 필요경비를 추가 교사인건비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죠. 그리고 이 방법으로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교사 휴가, 부모가 참여하면 가능하다
교사에게 쉴 시간도 보장해줘야 했습니다. 부모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여름과 겨울, 교사 연수기간이나 업무 지원을 위한 졸업 및 신학기 준비기간에 미리 날짜를 공지하고 활동 가능한 부모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 부모들이 아이들과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것이지요.
부모협동보육시설에서는 교사에게 월차를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와 같은 활동을 하기도 하고요. 과연 민간인 우리 어린이집에서도 진행될 수 있을까요?
가능했습니다. 부모들 역시 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이 궁금해 했으니까요. 이런 활동은 또 부모가 교사를 이해하는데도, 어린이집 운영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모, 아이 맡긴 죄인? 어린이집 소비자?
'아이 어린이집 보내면서 할 일 되게 많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우리 어린이집 보내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건지 부모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종종 들어요.
그러나 인천 어린이집 사건을 비롯하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며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절대 생길 수 없는 사건’이라는 안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CCTV 설치 법안이 발의 되었을 때 부모회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우리 어린이집처럼 개방된 시설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한 사실은 이번 사건이 보여줬듯 CCTV 설치가 절대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서학대가 늘어날 위험마저 있다."
그 과정을 보며 저는 어린이집과 교사 그리고 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신뢰와 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그렇게 불안해하며 CCTV를 요구하지 않았을 텐데 싶었습니다.
다시 저희 아이들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만 잘 보내주면 적응 후 잘 지낼 거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잘 지내려면 부모가 꼭 함께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람으로 생기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함께 쌓은 시간과 노력,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부모로서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대한 불안에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그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출처: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여정민 기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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